사이비 개인주의




나는 개인주의다. 그것도 정말 철저하게 개인주의다. 가끔가다보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더러있더라. '저는 개인주의입니다' 라고 말하면 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보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개인주의랑 이기주의는 진짜 완전히 다르다. 이기주의는 정말 자기만 알고, 자기가 중심인거고, 자기가 짱인 마인드를 말하는거고, 개인주의는 말 그대로 개인을, 개개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존중해달라는 마인드다. 나는 너를 방해하지 않을테니 너 역시 나를 방해하지마라. 나는 내 할일을 할테니 너는 네 할일을 해라. 내가 너에게 50을 받았으니 나도 50을 주겠다. 어찌보면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가장 편하고, 합리적이며 뒤탈없는 마인드인것 같다. 내가 이런말을 하면 누군가는 정이 없다느니, 야박하다느니, 냉정하다느니. 이런말을 한다. 결국 한국에서 지내는내도록 그렇게 나는 냉정하고 정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사는동안 나는 내가 유독 정이 없는게 아니라는걸 느꼈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개인주의니까. 그렇다고해서 외국마인드가 더 낫다느니, 뭐가 더 낫고 안좋고, 높낮이나 판단을 하자는게 아니라, 내 마인드는 한국인들보다는 외국인과 더 잘맞는다는 뜻이다. 

한국사람들의 대부분 마인드에서는 나는, 그래, 소위말해 정이 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아무리 개인주의라도, 뭔가 받으면 그에 모지라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딱 받은만큼, 더도 덜도 아니고, 적당하게 상응하는 만큼 돌려준다. 정도 그렇다. 그냥 그 사람과의 관계만큼, 더도 덜도 말고 그 사람과 나와의 거리만큼 주는거다. 상대가 거리를 두기를 원하면 거리를 둬주고, 성큼 다가와주면 나 또한 그만큼 성큼 다가간다. 굳이 내가 먼저 거리를 둔다거나,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그뿐이다. 

가만보면 나는 어릴때부터 항상 이런 성격이었다. 정말 내가 원한다거나, 혹은 좀 부담을 느낀다거나 그러는게 아니면 그냥 딱 중간을 지켰다. 이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나, 일이나 학업에도 적용되었다. 성적도, 물론 만점받으면 좋긴하지만 내가 만족하는 선이나 조건만 만족한다면 딱히 욕심은 없었다. 내 이런 성향은 일을할때 확실히 드러났다. 나는 일을 할때 남의 영역에는 절대 침범하지 않는다. 간섭도 하지 않으려하고, 훈수 놓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영역인데다가 나도 남한테 참견받고 훈수들으면 기분 나쁘고 언짢을테니까. 뭐, 좋게 포장해서 이렇게 말하는거지, 사실 관심이 없었다. 혹시 알려준다면 알아놓기는 할까, 되도록이면 절대 왈가왈부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할때 느낀거지만, 참,...  한국은 일을 하나를 하면 참 부수적으로 신경써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 일만 잘하면되지가 아니었다. 눈치싸움에 늘 분위기를 봐야하고 미묘한 신경전을 느끼며, 말한마디 행동하나 조심해야하며, 정말, 내가 생각지도, 고려하지도 못했던 요소들까지 신경쓰고 챙겨야 했다. 솔직히 일보다 이게 더 나는 힘들고 신경쓰였다.... 그때 알았다. 나는 정말 한국의 사회생활과는 안맞는다. 그냥 내 일만 딱딱하고 끝내면되는 영국이랑은 너무나도 다르다. 분명 사회생활은 한국에서 먼저 했겄만, 나랑 맞지 않는 환경에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가만보면 이게 다 정이고 관심인거다. 악감정이든, 좋은 의미의 정이든, 남에게 관심이 있고, 감정이 있으니까 참견하고, 눈길 한번 더 가고, 신경 조금 더 쓰이고. 사실, 정말 관심이없으면 진짜 아예 노관심이다. 걔가 뭘하건, 뭘 주건, 어떻게되건. 정말 신경도 안쓰이고 아무감정도 안생긴다. 이건 내가 진짜 심한데, 심지어 나는 초등학교때 반에서 처음보는 남자애를 봤는데 그애가 나랑 같은반이라는 사실에 엄청 깜짝놀랬었다. 심지어 학기가 3개월이나 지났었는데 말이다. 그때 좀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라, 이 지독히도 무심한 성격을 고치고자 한 몇년은 새학기가되면 일부러 같은반 친구들 이름과 얼굴을 외웠으며, 심지어 출석번호랑 생일까지 수첩에 적어가면서 노력했었다. 뭐, 이제는 다시 안하긴하지만, 그래도 그때만큼 무심하진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래. 결국 다 관심이고 정인거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그나마 귀찮던 일들이 다 괜찮아졌다. 평소같았으면 장난쳐대는 친구나 동생에게 진심을 담아 짜증을 냈을텐데, '저게 다 관심의 표현이다' 라고 생각하니까 다 귀엽게 느껴졌다.  

가끔은 모든 사람들이 개인주의가 되면 어떨까? 상상하다가 소름이 쫙 돋아버린 적이 있다. 사람들이 전부 나같다라....정말 쌀쌀하고 삭막한 사회가 될거같다... 친하지 않으면 이름도 기억못하는 그런 사람들만 사는 사회라니... 결국 나도 로봇이 아닌 사람이기에. 개인주의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면서도, 알게모르게 적당히를 넘게 오고간 내 감정들을 보면 참 스스로가 우습고도 웃기다. 가끔은 나 사이비 개인주의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좋다. 비록 나랑은 조금 다를지는 몰라도 정이 많은 한국이, 사람들이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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